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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명품 시계 받자마자 팔고 기부···세계적 윤리학자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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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갱 작성일25-06-15 06:00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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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당신은 작은 연못에서 무언가가 첨벙거리는 것을 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당장 뛰어들어 아이를 건져내지 않으면 그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행히 연못은 그리 깊지 않아서 당신은 충분히 물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다. 다만 새로 산 신발이 더러워지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될 겁니다. 아이를 보호자에게 데려다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회사에 늦을 게 뻔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아이를 구하실 건가요?
대부분은 자신이 손해를 봐도 아이를 바로 구하겠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기부’에 대입해봤을 땐 어떨까요? 지구 반대편, 극심한 가난으로 하루하루의 생존이 위태로운 이들을 위해 당신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나요?
세계적인 윤리학자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극빈층을 돕는 기부를 ‘윤리적 의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기부가 눈앞의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봐요. 사회탐구 과목 ‘생활과 윤리’를 공부하신 분은 싱어 교수의 이름이 익숙할 텐데요. 책 <빈곤 해방(원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로 널리 알려진 그의 주장은 억만장자들의 ‘기부 서약’을 이끌어내는 등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한 오늘날, 기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기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점선면은 기부 캠페인을 널리 확산한 <빈곤 해방>의 10주년 개정판 국내 출간을 맞아 싱어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싱어 교수는 1970년대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독립운동을 지켜보며 빈곤과 기근 문제에 주목하게 됐다고 합니다. 서파키스탄 정부가 방글라데시를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900만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윤리 공부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잘못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며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싱어 교수는 작은 기부가 지구 반대편 극빈층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글 첫머리에 나온 ‘물에 빠진 아이’ 이야기처럼요. 여기서 극빈층이란 한 끼의 식사나 최소한의 주거조차 구할 수 없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을 뜻해요. 세계은행에 따르면 하루 약 2572원(1.90달러) 이하 소득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은 7억명에 달합니다.
7억명이라니, 숨이 턱 막힙니다. 나 하나가 이런 거대한 비극을 멈출 수 있을까요? 싱어 교수는 기부가 결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며 실제로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적극적 기부를 통해 극빈층 인구가 2009년 14억명에서 현재 7억명으로 줄었고,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어린이 수도 980만명에서 480만명으로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기부로 천연두·홍역·말라리아 퇴치 캠페인을 벌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000원짜리 비타민A 영양제, 2000원짜리 모기장 같은 것들이 해낸 일입니다.
하지만 선뜻 기부를 결정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싱어 교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요. 책 <빈곤 해방>에서 그는 ‘내 삶이 흔들리는 정도로 기부할 필요는 없다’며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이 중위소득을 넘는 사람은 버는 돈의 1%를 기부하고, 그보다 더 많이 버는 이들은 늘어난 소득에 맞춰 ‘누진세’처럼 기부율을 늘리자고 해요.
싱어 교수의 주장은 실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어요. <빈곤 해방> 초판이 나온 2009년 이후 그의 주장에 동조한 여러 억만장자는 기부 서약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맺었습니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이 생전이나 사후 재산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다른 이들의 기부도 늘었죠. 골드만삭스와 같은 기업은 임원급 직원이 수익 일부를 기부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윤리적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부해야 한다는 싱어 교수의 주장은 얼핏 급진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보상을 타인과 나누는 게 공정하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죠.
싱어 교수는 선진국 시민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건 그 사회에 태어나 사회적 자본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적절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운’이자 ‘특권’이라는 뜻이죠. 싱어 교수는 “전 세계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잔인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선진국 기업들은 저개발국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 자원을 수탈하기도 해요. 싱어 교수는 그런 상황에서 선진국 시민들이 지구 반대편 극빈층에게 기부하는 건 윤리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기부에 초점을 맞춘 싱어 교수의 주장이 빈곤을 낳는 ‘구조적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점선면도 이 점을 물어봤는데요. 싱어 교수는 “그런 주장은 대부분 기부를 하지 않으려는 핑계로 작용한다”며 “그들은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지는 말하지 않고, 그런 변화를 추구하는 단체에 상당한 기부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어요.
싱어 교수는 이어 “정부가 세수 일부를 극빈층을 효과적으로 돕는 데 사용하면 좋겠지만 거의 모든 나라가 수입의 1%도 기부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니 여러분의 나라가 마땅한 기부를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스스로 기부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했어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처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반창고조차 붙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부 문화를 둘러싼 상황이 좋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각자도생과 극우 세계관이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어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폐쇄하고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결정을 내렸습니다. 싱어 교수는 “USAID 기금으로 생명을 구하는 지원을 받던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했어요.
기후위기도 새로 떠오른 변수입니다. 싱어 교수는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부유층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라며 “향후 수십 년 동안 수억 명의 사람들이 거주 지역에서 더 이상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어 난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부가 많은 극빈층을 위기에서 구했고, 구하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싱어 교수가 기부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죠.
싱어 교수는 이 같은 윤리적 실천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최근 포럼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시계를 경매에 내놓아 1300만원이 생겼고, 이를 말라리아 퇴치 재단에 기부한 일을 들려줬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시계를 차고 다녔다면 “저는 이 시계 값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꼴이 된다고 했어요. 싱어 교수는 “시계를 차는 것보다, 제가 (시계를 판 돈으로) 많은 사람을 말라리아로부터 구했다는 사실이 훨씬 더 행복했다”며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거나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회복하는 데 돈을 쓸 수 있는데, 왜 굳이 수천 달러를 들여 명품 핸드백이나 시계를 사는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1순위 조건을 ‘물질적 풍요’로 꼽는 한국에서도 기부가 잘 이뤄질 수 있을까요? 영국 자선지원재단 CAF 집계를 보면, 2023년 한국의 기부지수는 142개국 중 79위로 하위권이었습니다. 개인 기부금은 증가 추세지만 기업 기부금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어요.
싱어 교수는 한국 독자들에게 “물질적 행복을 중요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일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에 도달하면 소득 증가가 행복 증가로 이어지는 정도는 줄어들고, 다른 요인들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고 했어요. 돈보다는 타인과의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죠. 그는 “자기 자신 이상의 목적을 갖는 것 또한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며 한국 독자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서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극빈층을 돕기 위해 모두가 기부에 동참해야 한다’는 싱어 교수의 주장은 국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의 기부론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의견에 공감하며 기부에 나섰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이들이 늘면서 극빈층의 삶이 실제로 개선되는 효과도 낳았죠. 점선면 독자님들은 싱어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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