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세상 속으로]차별, 사회 붕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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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갱 작성일25-06-13 15:01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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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4일부터 18일까지 바르샤바 국제도서전에 참여했다. 주빈국이 한국이라 한국 작가님들이 대거 초청받았다. 나는 SF 분야에서 오랫동안 같이 활동해온 김보영 작가, 전혜진 작가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폴란드에 갈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다. 도서전은 성황이었고, 유달리 날씨가 나빴는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나는 전부터 가고 싶었던 바르샤바 퀴어박물관에 갈 수 있었다. 김보영 작가와 전혜진 작가도 내가 퀴어박물관에 간다니까 흔쾌히 같이 따라나섰다.
바르샤바 퀴어박물관은 작은 공간이었고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서너 시간만 문을 연다. 상설 전시는 ‘퀴어의 역사’였다. 박물관 내부 벽을 빙 둘러 글과 사진으로 12세기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유럽 사회가 퀴어를 탄압한 역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지키며 살았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12세기 유럽에 “형제 맺기” 혹은 “자매 맺기”라는 방식으로 동성혼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퀴어박물관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폴란드는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현재 폴란드 헌법 전문에 자신들은 “신을 믿고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국가 정체성을 정의할 정도로 강한 가톨릭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파 정권이 들어선 후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을 하는 행위를 “동성애 선동”으로 규정해 각 지자체가 이를 금지하는 소위 ‘동성애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정책으로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이 차별적인 정책은 2025년 4월 폴란드 법원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10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올해 폴란드 대선에서 다시 한번 극단적인 보수파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앞날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퀴어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치 강제수용소의 분류표였다. 아쉽게도 원본이 아니라 원본을 촬영한 사진이 화면에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색깔의 역삼각형 위에 줄을 긋거나 아래에 동그라미를 붙여 강제수용소에 온 피해자들이 어떤 ‘죄목’으로 잡혀왔고 어떤 인종, 국적,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성향을 나타내는지 가슴에 붙인 도형만 보아도 알 수 있도록 아주 세밀하게 분류한 내역이 적혀 있었다. 정치범은 빨간색, 상습범죄자는 녹색, 이주민은 짙은 파란색, 성경학자는 보라색, ‘동성애자’는 분홍색, ‘반사회분자’는 검은색 역삼각형이다. 이 ‘죄목’을 나타내는 역삼각형 아래에 유대인은 노란색 삼각형을 깔고 다른 인종이면 역삼각형 안에 P(폴란드인), T(체코인) 등 머리글자를 넣어 인종과 국적을 표시했다.
장애인은 분류표에 없다. 전부 죽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나치당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며 부상하자 가장 먼저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지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시작했다. 노동과 생산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장애인은 “가치 없는 생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궁리하고, 독가스실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스를 선별하고, 어느 정도 가스를 사용해 어느 정도 규모의 공간에서 사람을 몇명이나 죽일 수 있으며 화장장이 시신을 한 번에 어느 정도 태울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연구했다. ‘연구’가 완성되자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는 ‘T4 작전’을 진행해 대략 25만명의 장애인을 학살했다.
나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생각했다. 장애인 차별이 사회 붕괴의 시작이다. 그리고 차별의 끝은 폭력과 파괴와 전쟁과 학살이다. 이것은 역사가 알려주는 엄연한 사실이다.
나치가 이주민, 성소수자를 상습범죄자, 반사회분자와 나란히 분류표에 적어놓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장애인은 분류하기 전에 그냥 다 죽여버렸다는 사실도.
“가치 있는 생명”을 감히 분류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퀴어박물관을 나오기 전, 우리는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을 했다. 전혜진 작가는 차고 있던 서울퀴어문화축제 프라이드 팔찌를 기증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6월14일 개최된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함께 행진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전부터 가고 싶었던 바르샤바 퀴어박물관에 갈 수 있었다. 김보영 작가와 전혜진 작가도 내가 퀴어박물관에 간다니까 흔쾌히 같이 따라나섰다.
바르샤바 퀴어박물관은 작은 공간이었고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서너 시간만 문을 연다. 상설 전시는 ‘퀴어의 역사’였다. 박물관 내부 벽을 빙 둘러 글과 사진으로 12세기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유럽 사회가 퀴어를 탄압한 역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지키며 살았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12세기 유럽에 “형제 맺기” 혹은 “자매 맺기”라는 방식으로 동성혼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퀴어박물관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폴란드는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현재 폴란드 헌법 전문에 자신들은 “신을 믿고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국가 정체성을 정의할 정도로 강한 가톨릭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파 정권이 들어선 후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을 하는 행위를 “동성애 선동”으로 규정해 각 지자체가 이를 금지하는 소위 ‘동성애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정책으로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이 차별적인 정책은 2025년 4월 폴란드 법원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10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올해 폴란드 대선에서 다시 한번 극단적인 보수파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앞날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퀴어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치 강제수용소의 분류표였다. 아쉽게도 원본이 아니라 원본을 촬영한 사진이 화면에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색깔의 역삼각형 위에 줄을 긋거나 아래에 동그라미를 붙여 강제수용소에 온 피해자들이 어떤 ‘죄목’으로 잡혀왔고 어떤 인종, 국적,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성향을 나타내는지 가슴에 붙인 도형만 보아도 알 수 있도록 아주 세밀하게 분류한 내역이 적혀 있었다. 정치범은 빨간색, 상습범죄자는 녹색, 이주민은 짙은 파란색, 성경학자는 보라색, ‘동성애자’는 분홍색, ‘반사회분자’는 검은색 역삼각형이다. 이 ‘죄목’을 나타내는 역삼각형 아래에 유대인은 노란색 삼각형을 깔고 다른 인종이면 역삼각형 안에 P(폴란드인), T(체코인) 등 머리글자를 넣어 인종과 국적을 표시했다.
장애인은 분류표에 없다. 전부 죽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나치당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며 부상하자 가장 먼저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지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시작했다. 노동과 생산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장애인은 “가치 없는 생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궁리하고, 독가스실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스를 선별하고, 어느 정도 가스를 사용해 어느 정도 규모의 공간에서 사람을 몇명이나 죽일 수 있으며 화장장이 시신을 한 번에 어느 정도 태울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연구했다. ‘연구’가 완성되자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는 ‘T4 작전’을 진행해 대략 25만명의 장애인을 학살했다.
나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생각했다. 장애인 차별이 사회 붕괴의 시작이다. 그리고 차별의 끝은 폭력과 파괴와 전쟁과 학살이다. 이것은 역사가 알려주는 엄연한 사실이다.
나치가 이주민, 성소수자를 상습범죄자, 반사회분자와 나란히 분류표에 적어놓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장애인은 분류하기 전에 그냥 다 죽여버렸다는 사실도.
“가치 있는 생명”을 감히 분류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퀴어박물관을 나오기 전, 우리는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을 했다. 전혜진 작가는 차고 있던 서울퀴어문화축제 프라이드 팔찌를 기증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6월14일 개최된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함께 행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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